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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갇힌 아이들] 2-2. 현장르포
글쓴이 : 김인희 날짜 : 2004-05-28 (금) 11:21 조회 : 1713
[중앙일보] 2004-03-24 (종합) 기획.연재 A04면 43판 7148자 스크랩


#1 부모 무관심 → 의욕 상실 → 학업 중단
서울 성북구 길음동의 성수(16)는 매일 정오 무렵에야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혼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찾아
가는 곳은 버려진 동네의 누추한 골목 안 PC방. 친구 서넛은 이미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다.
성수는 중1 때인 3년여 전부터 학교와는 담을 쌓고 말았다. 딱히 이렇다할 까닭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야말
로 어렴풋이나마 학교에 대한 열정이나 재미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두 번 저지른 지각에 길들여졌고,
길들여진 지각은 그보다 더 많은 결석으로 이어졌으므로 어느 날 자퇴를 해야 될 것 같았다.
술에 절어 한달에 두세 번 뒤뚱뒤뚱 집을 찾아오는 아버지나, 따로 살고 있는 엄마 역시 그 위험한 도피를 눈꼴
사납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애써 만류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해도 그에게 하루는 노루 꼬리처럼 짧기만 하다. 날마다 모이는 친구 다섯도 모두 중학교
를 일찌감치 자퇴해서 냉소적이고 풀 죽은 아이들이다.
한 친구는 몇 달 동안 PC방에웅크리고 앉아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고, 나머지는 용돈이 떨어지면 띄엄띄엄
일을 나간다. 끽해야 배달원이거나 주차요원이 그들 차지다. 하지만 이것도 반딧불처럼 잠시 반짝할 뿐 그들
의 삶에 역동성을 심어주지 못한다.
이들에게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동네 형(22)이 그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그 역시 중학교를 중퇴한 상처를
가졌지만, 지금은 포장마차를 차려 수입이 짭짤한 청년이다.
그 형은 술집 웨이터.호스트바 종업원같이 밑바닥을 훑으며 맵고 짜고 알뜰하게 식물채집하듯 돈을 모아왔다.
성수 '6인조'에겐 돈을 모아온 경위나 수단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빈곤층 출신으로 학업을 중단한 13~18세 청소년에게 학업중단 이유를 묻는 조사를
했다.
이에 '집안 생계 때문'이라고 답한 것은 전체의 20.8%에 그쳤다. 나머지는 '가정에 대한 불만'(32.7%), '공부
가 싫어서'(23.9%), '학교가 싫어서'(22.6%) 순이었다. 가족에 대한 불만과 학습의욕 상실이 지금의 성수 '6
인조'를 만들어준 것이다.
#2 아동 방치 → 지능 저하 → 학습 곤란
지난 2월 서울시립동부아동상담소에 재입소한 정훈(13)이의 지능지수(IQ)는 80으로 측정됐다. 4년 전 이곳
에 처음 입소했을 때는 IQ가 115였다. 집으로 돌아간 뒤 머리가 더 나빠진 것이다. "부모가 먹고사는 것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아이들의 학업이나 생활태도 등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방치되다 보니 아이들의 지
능도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는 거지요." 이 상담소 박미정 과장의 진단이다. 그래서인지 상담소에 들어오는 아
이들의 IQ검사를 해보면 10명 중 6명 정도는 8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올해 1월 안양소년원에 들어온 정연(17.여)이의 IQ 역시 80을 조금 넘는다. 수리개념 등 모든 면에서 또래들
과 비교해 훨씬 처진다. 하지만 정연이 생각은 다르다. "공부하라고 야단치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어요. 그렇다
고 못한 것도 아니에요." 중학교를 중퇴한 그의 기억에는 초등학교 기억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알
게 된 그 당시 지능지수는 110을 훨씬 넘었다고 한다.
그의 심리상담 기록에는 이렇게적혀 있다. "낙관적이고 게으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행위를 모방하는 성
격이 강하다." 정연이는 어릴 적부터 막노동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던 아버지의 사랑이 늘 그립다. 어머니는
정연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신병을 앓아 착실한 부모 구실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가슴 속에는 언제나 수치심만 가득할 뿐 삶에 중력을 두고 아득바득 살아가려는 목마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가출해버렸다. 하지만 몸 전체로 확산되는 배고픔만 기다리고 있었던 정연이가 친
구와 함께 당장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남의 집 담을 넘는 것이었다. 그 끝에는 소년원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3 부친 실직 → 책상 없는 방 → 성적 저하
곰팡이가 시커멓게 슨 벽지, 벽에 난삽하게 걸린 남루한 옷가지, 세 사람이 옥죄어야 겨우 누울 수 있는 2평 남
짓한 옹색한 공간…. 휠 대로 휜 삶의 질곡이 써늘하게 드러난 그 생활공간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유현(12.초
등 6학년)이를 맞이하는 집, 서울 봉천동 S여인숙 단칸방의 살풍경이다. 소년은 이곳에서 고물을 주워 파는
아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소년에게는 공부방은커녕 책상도 의자도 없다. 그래서일까, 오후 5시 학교에서 진작 돌아왔어야 할 시간이지
만 소년의 행방은 묘연하다. 소년의 엄마는 "집이 이러니 애가 안 들어오지. 그래도 학교라도 다녀서 다행"이
라고 말한다. 얼마 전까지 학교를 빼먹고 동네의 '나쁜'애들과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공부할 곳도 없는데 일
찍 들어와서 뭐해"하며 볼멘소리를 하는 소년에게 엄마가 다독거려줄 말은 없다. 여인숙에 들어오기 전 유현
이 가족은 노숙자 쉼터에 있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임시시설을 찾아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소년은 공부를 곧잘 했다. 하지만 술을 입에서 떼지 못하는 아빠의 공격적인 언사가 이웃을 괴롭
혀 그나마 쉼터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무척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학습지를 풀면 틀려도 하나 정도였지요. 그런데 이곳을 나가고 난 뒤 밖으로만 돌
더니 지금은 성적은 물론 성격마저 모가 난 것 같아요." 유현이네 가족이 머물렀던 노숙자 쉼터 관계자는 "가
끔 찾아가 만날때마다 점점 태도가 나빠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이런 식으로 가다간 초등학교 졸업장만 가
지고 사회에 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동보호시설에서 가르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4 가정 해체 → 공장으로 → 뒤늦은 학업
상상하기 어렵지만 희귀한 일도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세상의 억압에 시달려 소주를 입에 댔던 아이가 있
다. 지금도 아동상담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수영(18)군이 바로 그 당사자다. 열일곱살이었던 지난해에야 가
까스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던 崔군, 그의 아버지는 그가 네살 되던 해에 알코올 중독으로 초라한 삶을 마감
해버렸다. 생활고의 어두운 잔상들을 이겨내지 못한 어머니 또한 초등학교 1학년 때 세상 어디론가 자취를 감
추었다.
유일한 피붙이였던 누나 역시 그로부터 2년 뒤 공장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갓길에 교통사고로 숨졌다. 혈혈
단신이 된 崔군의 나이는 불과 열살, 그로부터 고결한 삶을 예견할 수 있는 학교와는 등지고 살 수밖에 없었
다. "공장에서 실이나 뽑으면서 술 마시고…그러면서 혼자 살았어요."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조차 외면하지 않
으면 안 되었던 그에게 나라와 이웃들은 매몰찰 만큼 무관심했다.
지난해 초 이곳 상담소에 보호수용되면서 중입(中入) 검정시험을 치를 수 있겠다는 여유를 찾았다. 崔군은 앞
으로 몇 년 뒤 정녕 밀도있는 교육이 예약된 어엿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까.
특별취재팀=이규연.김기찬.김정하.손민호.백일현.이경용 기자
사진=안성식.박종근 기자
◇알림=18세 이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우려가 있어 가명을 썼습니다.
◈이것만은...
"정부는 '모.부자(母.父子) 복지법'을 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법은 직접적인 교육비만 지원할 뿐 학용품비
등은 해결해 주지 못한다. 아이들의 교육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추가 지원책이 필요하다."
-노숙자쉼터 '살림터' 남철관 총무
"저소득 계층이 몰려 있는 곳은 거의 무허가 건물인 경우가 많다. 이런 곳에 들어선 공부방은 정부 지원을 받
지 못한다. 관련법을 바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무를 심는 학교' 심상혁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시설에 모든 걸 기대하는 건 무리다. 먼저 학교가 아이들이 지저분하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포기해
선 안 된다. 그 다음에 사회복지시설의 보호망을 생각해야 한다."
-서울 봉천종합사회복지관 문희연 사회복지사
"주정뱅이 아버지와 노점상 어머니 밑에서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업해 생계를 책임지는 아이들 얘기는
1960년식 스토리다. 요즘 아이들은 가출을 결심한다. 빈곤층 아이에게 가장 시급한 건 '커서 무엇이 되고 싶
다'란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한국도시연구소 신명호 부소장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함께 교육.지원.관리해야 한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
지 않으면 '교육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이재연 교수
◈교육환경 살펴보니...
빈곤층 아이들은 출발부터가 힘겹다. 부모의 경제 형편과 무관심 때문에 과외는 고사하고 동네 학원도 다니는
애가 많지 않다. 이는 고교 및 대학 진학에도 영향을 준다.
본사 취재팀이 정부 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분석한결과 소득 상위계층의 월 사교육비는 소득 하
위계층의 네배에 이른다. 특히 자녀에게 과외를 시키는 가구는 소득 하위계층의 경우 2.2%에 불과한 반면 소
득 상위계층은 여덟배인 17.5%나 됐다. 가구당 자녀의 주당 사교육 시간도 소득 하위계층이 11시간인 반면
상위계층은 22시간으로 그 두배였다.
사교육비 차이가 네배인데 사교육 시간 차이가 두배에 그친 것은 교육의 질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예컨대
상위계층은 개인 과외 등에 지출하는 비율이 높은 반면 하위계층은 주로 어린 아동의 태권도.미술 학원비로 쓰
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소득 계층에 따라 학교 성적이 더 많이 차이 나는 것으로 보인다. 취재팀이 빈곤지역
공부방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선 초등학생의 73%가 '공부를 잘한다'고 답한 반면 중.고교생은 88%
가 '내 성적이 나쁜편'이라고 답했다.
사교육비 지출 수준은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가져온다. 노동연구원 분석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실
업고 진학에서 계층 간 차이가 뚜렷했다. 하위계층의 38.3%가 실업계 고교에 진학한 반면 상위 계층은 13%
만 갔다. 빈곤층 아이들이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 생활 전선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소득 하위계층의 자녀는 64.4%가 대학에 들어간 반면 소득 상위계층은 78.9%가 대학문을 넘었다. 14.5%
포인트의 차이가 난다. 이번 조사에선 빈곤층 학생이 상위권 대학에 얼마나 입학하는지는 분석하지 못했다.
노동연구원 방하남(房河男)연구위원은 "교육 기회의 계층 간 불평등이 학력 차별을 낳고, 이런 학력 차별은 심
각한 학벌사회 세태와 맞물려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노동연구원의 분석 결과
부친의 학력을 자녀가 그대로 이어받는 경우가 4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4명이 부모와 같거
나 비슷한 학력을 가진다는 말이다.
◇노동패널 분석 방법=노동시장 동향 등을 파악하기 위해 매년 전국 5000가구를 상대로 소득.교육.고용.복
지 실태를 조사해 얻어지는 노동패널 자료(2002년)를 분석 대상으로 했다. 소득 계층별로 교육비.진학률.수
능성적 등을 뽑았다. 소득 계층은 하위(25%).중하위(25%).중상위(25%).상위(25%) 등 넷으로 나눴다. 수
능 성적은 만점을 기준으로 일정한 점수 차에 따라 25%씩 묶어 상위.중상위.중하위.하위 등 네개 그룹으로
나눴다.
특별취재팀
◈일반고교생 하루 10여시간 공부할때 가난한 집 아이는 피자집서 아르바이트
국가인권위원회는 빈곤층 성인.청소년 25명을 상대로 한명당 10시간 이상 심층면접을 했다. 이를 통해 자신
의 태도와 가정.학교.사회.친구 등이 지금의 빈곤 상태에 이르게 하는 데 어떤 영향을 줬는지 등을 조사했다.
본사 취재팀은 인권위 조사를 토대로 이들 사례를 교육.건강.소외 등 몇몇 유형으로 묶어 빈곤화 과정을 역추
적했다. 그 첫번째로 '교육 빈곤에 갇힌 아이들' 편을 싣는다.
빈곤층 아이들은 중산층보다 왜 공부를 못 할까. 단지 경제적 여건 때문일까. 돈만 주면 빈곤층 아이들도 바로
학업을 통한 가난 탈출이 가능할까. 취재팀은 빈곤과 학업환경의 연관성을 밝히고자 했다.
인권위의 조사대상 25명 가운데 중.고교 시절 학업을 중단했거나 대학 진학을 포기한 10명의 사례를 추렸다.
그리고 한국도시연구소가 조사해 놓은 중산층 사례(12명)와 비교해 봤다. 또 이 중 대표적인 중산층.빈곤층
젊은이 한명씩을 뽑아 어릴 적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부모가 성적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등을 물어봤다.
취재에 응한 두 사람 모두 "지난 삶에 대체로 만족한다"고 답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
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둘의 삶은 현재까지는 사뭇 다르다. 과거의 교육 여건, 특히 부모의 관심.태도가 크게
달랐다.
인권위의 조사 대상 10명 가운데 중.고교 중퇴자 수는 4명, 나머지 6명은 실업고 재학 또는 졸업자다. 이들 모
두 어릴 적부터 부모와 학교 어디에서도 교육과 관련된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부모가 성적표를 확인
한 기억이 없다' '엄마.아빠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한 적이 없다' 등의 답변이 나왔다. 반면 도시연구소에서 분석
한 중산층 조사에선 12명 모두 부모와 학교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시험 성적이 낮게 나오자 다
음날 아침 밥상에 밥그릇이 없었다'는 등의 지나친 교육열을 느꼈다는 응답도 있었다. 빈부 격차에 따른 교육
환경의 차이가 현재 각기 다른 인생의 길을 걷는 데 큰 영향을 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인권위 연구팀은 "빈곤층 아이들은 미래를 계획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불안정한 상태로 사회에 진입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이 허송세월로 보내는 지금 이 시간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도 가르
쳐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용어설명
◇빈곤층=빈곤에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적 빈곤, 다른 사람과 비교해 적게 가졌다고 느
끼는 상대적 빈곤, 자신이 충분히 갖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주관적 빈곤 등 세 가지가 있다.
취재팀이 쓴 빈곤층에는 정부에서 생계 지원을 받는 가구와 최저임금을 받고 있으면서도 지원대상이 아닌 가
구, 가정해체.실직 등으로 갈 곳 없는 가구 등이 포함됐다.
◇공부방=방과 후 갈 곳 없는 도시 저소득층 지역의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 민간이 운영하고 있는 무료보육
시설. 전국 400여곳에서 1만여명을 맡고 있다.
◇아동복지시설=▶아동상담소=가출하거나 사소한 비행을 저지른 아이를 보호.지도한다▶영.육아시설(옛 고
아원)=아이를 키우기 불가능한 가정의 18세 미만 아동을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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