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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아픈 현실
글쓴이 : 김인희 날짜 : 2004-06-03 (목) 12:55 조회 : 1264
서울 영등포 쪽방동네 사람들




△ 0.6평짜리 쪽방에 간신히 누워 있는 박기태씨. 어둡고 냄새나는 비좁은 방에서 그는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벗어나고 싶다…그러나 길이 보이지 않아

박기태(51)씨는 1998년 겨울 영등포 대합실에서의 하룻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대합실 의자에 누웠지만 한겨울의 황소바람은 살을 에는 듯했다. 밤새 오돌오돌 떨다 맞은 아침해는 얼마나 따뜻했던지.


33만원 받아 방세로 17만원



그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충남 홍성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 돈이 없어 병원을 나왔다. 의료진도 치료 불가 판정을 내렸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던 두 아들이 있었지만 병마로 뒷바라지는 커녕 짐이 될까 헤어지기로 한 터였다. 큰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혼자입에 풀칠이라도 할 요량으로 서울로 올라왔지만, 누구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박씨는 사흘간의 영등포역 앞 노숙 생활을 거쳐, 광야교회의 도움으로 근처 쪽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벌써 6년이 흘렀다.

박씨의 삶이 처음부터 헐벗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이 쪽방에서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어서 그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여유있는 집안에서 자랐다. 자신도 고교를 졸업한 뒤 충남의 한 군청에서 일하며 결혼해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하지만 어느날 병마가 그를 덮쳤다. 고3 때 학교 3층옥상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것이 원인이 됐다. 몸이 조금씩 마비되기 시작했다. 결혼 12년째 그는 아내와 헤어졌다. 날로 악화되는 병세보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결혼 12년째 병마가 그를 덮쳤고 그는 아내와 헤어졌다.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는 지금 0.6평 짜리 쪽방에서 혼자 산다. 병든 몸 하나 편하게 누일 자리가 없는, 기지개조차 켜기 힘든 어둡고 냄새나는 좁은 방. 하루 하루 목숨을 이어갈 뿐 희망이 없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인 그에게 한달에 33만원을 준다. 방세로 17만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쌀과 반찬거리 등을 산다. 그는 일하고 싶다. 건강이 악화돼, 왼쪽 몸이 마비되고 있지만 아직도 그는 제 몸으로 일해 살고 싶단다. 당장 입에 풀칠하는 것보다, 이런 비참한 삶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박씨는 이채언(70)씨에 견주면 사정이 낫다. 12년째 4층 건물 한 켠의 냄새나고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쪽방에서 살고 있는 이씨는 요 몇년새 몸이 아파 하루종일 방에서 누워 지낸다. 한때 ‘잘 나가는’ 보일러 기술자였다지만 쇠약해진 몸 탓에 2년전부터 일을 못하고 있다. 소식이 끊긴 지 한참 된 3남매가 자신의 호적에 올라 있어 그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못 됐다. 낡은 가구 위 먼지 앉은 액자 속에는 20년전의 딸과 손녀 사진이 놓여있다. 그는 가끔 공사현장에서 인부가 부족해 연락이 오면 나가서 일해 번 돈으로 먹고 산다. 그는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힘겹게 말했다.

대부분 독신으로 살아가는 쪽방 동네지만 가정을 꾸린 사람들도 있다. 22년전 첫 남편과 사별하고 영등포 쪽방에 들어와 힘겹게 2남1녀를 키워온 전춘옥(48)씨는 오이훈(44)씨와 지난 5월 이곳에서 재혼했다. 7년여전부터 쪽방에 살아온 오씨는 수세미, 편지봉투 등을 팔아 하루 1~2만원 벌이를 하고 있지만, 전씨는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한다. 이들은 그러나 정부로부터 생계보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곳을 벗어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 한다.


4명중 1명에게만 정부보조



영등포역 옆으로 파출소를 지나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오면 찾을 수 있는 곳. 나무판자로 지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곳이 이른바 영등포 쪽방촌이다. 한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방들이 553개. 이곳에 사는 사람은 485명(2003년 12월 기준)이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220명(장애인 100여명 포함)에 불과하고, 독거노인은 47명에 이른다. 경기가 어려운 탓인지 쪽방 동네는 요즘도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 전국적으로 쪽방 밀집지역이 확인된 곳만 11곳이다. 지난해말 보건복지부 조사를 보면, 영등포를 비롯해 서울 남대문로, 종로구 돈의동, 창신동과 부산, 인천, 대구, 대전 등 11곳에 9030개의 쪽방이 있고 6545명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로 최저생계비를 정부로부터 보조받고 있는 사람은 23%인 1512명.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는 쪽방상담소가 쪽방밀집지역마다 있지만, 쪽방 거주자들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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